1편: 가죽 공예 입문: 베지터블 vs 크롬 가죽 차이와 나에게 맞는 가죽 고르기

가죽 공예에 관심을 두고 나만의 소품을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했을 때, 가장 먼저 발걸음을 막아서는 장벽은 바로 '가죽의 종류'입니다. 동대문이나 신설동 가죽 시장을 방문하거나 온라인 가죽 판매처를 둘러보면 "베지터블 탄닌 가죽", "크롬 무두질 가죽", "풀그레인" 등 생소한 용어들이 쏟아집니다.

마음에 드는 색상만 보고 무작정 가죽을 구매했다가 집에서 바느질이나 단면 마감을 시도할 때 가죽이 늘어나거나 마감이 되지 않아 당황했던 경험이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내가 처음 가죽 공예를 시작했을 때도 예쁜 분홍색 가죽을 샀다가 단면 마감이 전혀 되지 않아 가죽을 통째로 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죽의 무두질(Tanning) 방식에 따른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면 실수 없이 목적에 맞는 가죽을 골라낼 수 있습니다.

1. 무두질(Tanning)이란 무엇인가?

동물의 피부인 '원피(Hide)'는 그대로 두면 부패하거나 바짝 마라 단단하게 굳어버립니다. 이 원피를 유연하고 부패하지 않는 유용한 '가죽(Leather)'으로 탈바꿈시키는 화학적·물리적 가공 과정을 무두질(Tanning)이라고 합니다.

이 무두질 과정에서 어떤 약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죽은 크게 베지터블 가죽(Vegetable Leather)과 크롬 가죽(Chrome Leather) 두 가지로 나뉩니다. 두 가죽은 물리적 성질과 사용할 수 있는 공예 기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2. 베지터블 가죽: 시간에 따른 에이징과 클래식한 매력

베지터블 가죽은 식물의 줄기, 뿌리, 과실 등에서 추출한 식물성 탄닌(Tannin) 성분을 사용해 수개월 동안 천천히 무두질한 가죽입니다.

  • 성질과 특징: 조직이 매우 촘촘하고 단단하며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가죽 표면에 자국이나 스크래치가 비교적 잘 남는 편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자의 손때와 햇빛(UV)을 받아 색상이 깊고 윤기나게 변하는 '에이징(Patinating)' 현상이 일어납니다.

  • 가죽 공예에서의 장점: 가죽 단면을 물이나 토코놀 성분으로 문지르면 마찰열에 의해 단면이 매끄럽게 광이 나는 '단면 마감(토코놀 마감)'이 가능합니다. 또한 가죽에 도장을 찍거나 문양을 새기는 카빙(Carving) 기법이 가능합니다.

  • 추천 용도: 지갑, 카드지갑, 벨트, 단단한 형태를 유지해야 하는 스몰 가죽 소품.

3. 크롬 가죽: 화려한 색감과 뛰어난 내구성

크롬 가죽은 염기성 크롬염(Chromium)이라는 화학 약제를 사용하여 단 수일 만에 빠르게 무두질한 현대적인 가죽입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가방, 구두, 아우터의 80% 이상이 크롬 가죽입니다.

  • 성질과 특징: 가죽이 매우 부드럽고 찰랑거리며 푹신한 질감을 가집니다. 수분과 오염, 스크래치에 강하고 염색이 착색되어 다양하고 화려한 파스텔톤 색상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에이징이 거의 일어나지 않아 처음 구매했을 때의 색상과 상태가 오래 유지됩니다.

  • 가죽 공예에서의 제한점: 가죽 단면을 단단하게 문질러 마감하는 토코놀 마감이 불가능합니다. 단면을 깔끔하게 하려면 페인트 성분의 '에지코트(Edge Coat)'를 여러 번 바르고 말리는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 추천 용도: 드레이프성이 필요한 가방, 유연한 파우치, 의류, 손때가 많이 타는 차키 케이스.

4. 입문자를 위한 나에게 맞는 가죽 선택 가이드

처음 가죽 공예에 입문하는 독자라면 '두께 1.2mm~1.5mm 내외의 베지터블 민자 가죽(민자 민트 또는 민자 소가죽)'으로 시작할 것을 강력히 권장합니다.

크롬 가죽은 너무 유연하여 치젤(구멍 뚫는 도구)을 칠 때 가죽이 밀리거나, 새들 스티치 바느질을 할 때 실을 조금만 강하게 당겨도 가죽이 주름지기 쉽습니다. 반면 베지터블 가죽은 뼛대가 있어 구멍을 뚫고 바느질을 연습하기에 훨씬 안정적이며, 마감재를 가볍게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완성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죽을 구매할 때는 단위인 '평(Sqft, 약 30cm x 30cm)' 개념을 확인하고, 초보자라면 자투리 가죽(소가죽 스크랩)이나 소량 자른 한 평 단위 가죽으로 카드지갑이나 키링부터 만들어보며 질감을 익히는 것이 좋습니다.

핵심 요약

  • 베지터블 가죽은 식물성 탄닌으로 무두질하여 단단하고 에이징이 일어나며, 단면 마감이 쉽습니다.

  • 크롬 가죽은 화학 약제로 무두질하여 부드럽고 오염에 강하지만, 에지코트 페인팅 마감이 필요합니다.

  • 가죽 공예 초보자는 구조감이 있고 작업하기 용이한 1.2~1.5mm 두께의 베지터블 가죽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글에서는 가죽에 일정한 바느질 구멍을 뚫어주는 핵심 도구인 '새들 스티치용 그리프(치젤)'의 종류와 날 폭 선택 기준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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